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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증명된 사실 - 이산화 소설집 리뷰

by 칠월색 2020. 1. 9.

표지 이미지 출처: 아작 출판사(https://arzak.tistory.com/247)

한국의 SF 작가 이산화 작가의 소설집 "증명된 사실"을 읽었다. 이전에 "우리가 먼저 가볼게요"라는 여러 한국 SF 작가들이 같이 쓴 앤솔러지를 읽고 북 토크에 가서 만난 작가이고, 그전에는 "오류가 발생했습니다"라는 표지 색이 신기한 장편 소설과 그가 웹에 연재한 단편소설들을 찾아 읽었다. 그가 주로 쓰기 좋아하는 주제가 무엇인지는 아직 콕 집을 수는 없었지만, 문체가 읽기 편해서 좋아하는 편이다. 그렇게 소설집 또한 찾아서 읽게 됐다.

처음 몇 편의 경우, 웹에서 읽어본 단편 소설이 있어 익숙하고 반가웠다. 그 중 "세상은 이렇게 끝난다"는 이과 고등학생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데다가 결말이 충격적인 편이라 인상 깊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읽어보지 못했던 프리퀄 격인 "한 줌 먼지 속"을 읽고 나니 더더욱 흥미가 생겼다. 이번에는 학원에서 과고 입시를 준비하는 중학생들이 주인공이었는데, 내가 학원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 입시를 준비하던 기간이 생각나면서 배경이 남 일 같지 않았다. 소설에서 이런 배경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 했기에 읽은 후에도 자꾸 생각이 난다. 내가 이 소설들에 나오는 중학생, 고등학생처럼 "코스모스"를 끼고 다닌다든가, 존경하는 과학자가 있고 그것에 맞게 오만하거나 어이없는 행동을 하는 편의 사람은 아니었지만, 주변 사람 중에는 그것과 가까운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이 분명 있었기에 장면을 상상하기 쉬웠다. 주인공의 성별을 정해두지 않고 글을 쓴 것도 좋았다.

그 두 소설 사이에 소개된 세 편의 소설은 과학자나 어떤 보안 기관에 근무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적힌 소설이었다. "증명된 사실"은 물리학자가 영혼을 연구하는 연구소에 들어가는 소설인데, 주제에서 예상가는 것보다 나름대로 물리학적 고증이 잘 되어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있어 흥미로웠다. "지옥 구더기의 분류학적 위치에 대하여"의 경우도 과학자의 관점에서 이상한 것을 바라본다는 점에서는 비슷했고, 학자들 간의 교류가 중점적으로 나온다는 점에서 교수님들이 서로 메일을 보내며 대화하는 것과 느낌이 비슷해 익숙했다. "햄스터는 천천히 쳇바퀴를 돌린다"에서는 다른 거대한 것보다 햄스터가 중요한 보안 기관 직원이 주인공으로, 블로그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점이 블랙코미디 같기도 하고 그 블로그의 내용 묘사가 현실적이어서 재미있었다.

그 이후의 일곱 개의 연작은 이산화 작가가 이전에 썼던 작업물을 꺼내어 손봐 낸 것이라고 하는데, 제목을 학명에서 따왔고, 인간과 인간이 아닌 무언가 사이의 교류나, 인간이 아닌 것이 인간과 비슷해지는 과정 등을 묘사한 글이 대부분이다. 모두 조금 색다른 주제였기에 인상 깊게 읽었지만, 그중 제일 인상적인 소설을 꼽자면 "희박한 환각"과 "우는 물에서 먹을거리를 잡아 돌아오는 잠수부"이다. "희박한 환각"은 최근 유행하는 장르인 '로맨스릴러'에 어떻게 보면 가까운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주인공 중 한 명이 인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촉수를 가진 해양생물이 인간과 교감하고 대화한다는 점이 비현실적이지만 원래 로맨스는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싶은 생각도 든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을 갈망하는 것은 흔하지만, 인간이 그 존재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 결말 부분이 흔히 보던 소설과는 다르고 제일 흥미로웠다. "우는 물에서 먹을거리를 잡아 돌아오는 잠수부"는 소재가 인상적이었다. 펭귄이 많이 언급되는데, 펭귄의 인간성이 돋보인다. 이것도 스릴러 분위기를 가진 걸 보면 내가 스릴러 장르 소설을 좋아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