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곽재식 작가님의 책이다. 매번 작가님의 책을 읽을 때마다 작가님의 다른 면모를 발견한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사랑 이야기다. 로맨스 소설책을 즐겨 읽지는 않는 편이다. 내 감정의 폭에 비해 감정의 높낮이가 너무 강해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은 로맨스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는 미스터리, 액션 장르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다루는 내용은 분명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이지만,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의 묘사에 더 집중한 글이다. 그게 오히려 감정을 묘사하는 것보다 더 진정성 있게 다가왔다. 하지만 로맨스를 기대하고 읽는다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로맨스이지만 로맨스가 아닌, 그런 느낌의 글을 곽재식 작가는 잘 쓰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서 제일 재밌게 읽은 소설이 '최악의 레이싱'이다. 배경이 대학교인 데다가 공대생, 대학원생, 교수님 등이 잔뜩 나와서 우리 학교와 비슷한 배경으로 느껴져서 더 공감이 가기도 했고, 주인공이 자전거를 못 타다가 타게 되는 게 나오는데 나도 대학교에 들어와서까지 자전거를 못 탔어 더 공감이 갔다. 아마 카이스트 학생이라면 '최악의 레이싱'은 많이 공감이 갈 것 같다. 주인공이 좋아하는 '그녀'를 뒤에 태우고 자전거를 타기 위해 거대한 공학 프로젝트가 만들어진다는 게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로맨스에서는 그렇게 사소한 감정에 큰 노력을 들이는 게 많이 묘사되다 보니 나에게는 그렇게 과하다기보단 '공대식 로맨스' 같은 느낌이 들어서 재밌기도 했다.
'달과 육백만 달러', '달팽이와 다슬기'는 연인 간의 감정보다는 가족 간의 감정을 묘사하는 글이다. 거기다 보통 로맨스에서 다루지 않는, 비전형적인 등장인물이 나온다. '달과 육백만 달러'는 제목에서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갑자기 자기도 모르던 5살 딸이 있다는 걸 알아버린 아빠가 엄마를 다시 찾아가는 이야기이고, '달팽이와 다슬기'는 다문화가정에서 자란 아이의 이야기다.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에서도 화자가 결혼하려는 아내는 한국인이지만 부모님이 한국인이 아니라서 사람들이 보기에 한국인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와 화자가 다문화가정에 대한 편견에 맞서는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곽재식 작가님은 이들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내는 글을 쓰지 않았다. 등장인물이 하는 행동이나 그 행동을 하기 전에 하는 논리적인 생각의 흐름을 묘사하는 것으로 내면을 표현하는 작가님의 특징이 좋게 반영되었다고 생각한다. 편견을 강화하지 않고,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달팽이와 다슬기'에서는 화자의 엄마가 다른 나라에서 왔지만, 국적이 한국이라서 한국인이라고 했는데, 엄마가 알려준 옛날얘기가 한국 얘기가 아니고, 엄마의 글씨가 너무 삐뚤삐뚤해서 선생님이 화자가 숙제하기 싫어서 지어낸 것으로 생각해버린다. 그때 화자의 억울함이 너무 공감이 가서 슬플 정도였다. 그렇게 우리 사회에서 정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이라도 독자가 공감할 수 있어 편견이 약해지게 해준다.
곽재식 작가의 글의 묘미 중 하나는 제목이나 시작 부분에서 소설의 중심 이야기를 예상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최악의 레이싱'은 나와 '그녀'와 지나라는 아이가 장을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거기서 어떻게 앞으로의 글에서 '내'가 '그녀'를 태우기 위해 자전거를 배우려 고군분투할 거라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처음 부분에서 화자가 나타나서 메인 이야기를 회상하거나 첫 부분이 회상 장면인 등, 도입부에서 급격하게 분위기가 변하는 점이 극적으로 느껴져서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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