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평

시티 픽션 - 조남주 정준 이주란 조수경 임현 정지돈 김초엽 단편 소설집 리뷰

by 칠월색 2020. 8. 30.

이 책은 밀리의 서재 종이책 정기구독을 통해 받은 책으로, 도시를 배경으로 한 단편을 묶어 낸 책이다.

책 마지막에 적힌 인터뷰를 보고 작가들도 뭔가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 그냥 우리 곁에 사는 사람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거 환경에서는 다들 취향은 있겠지만 그렇게 다르지 않은 생각을 할 것이다. 한국에 산다면 더욱이 유형화될 수밖에 없는 느낌이다. 작가들이 "마당이 있는 집을 좋아하는 사람", "벌레가 싫어서 단독주택에 살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는 걸 보게 될 일은 별로 없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이 기획이 마음에 들었다. 그저 우리 같은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 같은 느낌.

하지만 그런데도, SF나 판타지가 아닌 문학을 오랜만에 읽다 보니 밋밋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사람들을 조명하는 것이 문학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너무나도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위화감이 들 때가 있다. 특히 조남주 작가님의 <봄날아빠를 아세요?>는 정말로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 일어난 일 같이 느껴졌고, 만약 그렇다면 소설 속 인물들과 같은 사람들과는 별로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아서 왠지 꺼림칙했다. 조수경 작가님의 <오후 5시, 한강은 불꽃놀이 중>에서는 중소기업 사장의 불륜이라든가, 중고 거래 사기 장면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나도 주인공을 따라 슬퍼지는 기분이었다. 너무 우리 사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면 통쾌하다기보다는 찝찝하고 우울해지는 모양이다. 그런 어두움이 어쩌면 한국 순문학의 특징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조용한 어두움 속에서 작지만 밝게 빛나는 희망을 보여주는 것도 특징일지도 모르겠다. 종묘가 불타 없어진 후 방황하는 종묘 해설사 이도를 주인공으로 한 정용준 작가님의 <스노우>에서는 그런데도 긍정적인 생각을 놓지 않는 야간 경비원 친구와 마치 판타지처럼 등장한 고양이 스노우를 통해 절망 후의 희망을 보여준다. 이주란 작가님의 <별일은 없고요?>는 상실 이후 작은 도시로 옮겨온 주인공이 조금씩 회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나도 주인공처럼 집을 떠나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가서 조용히 사는 것만 같은 외로운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슬픈 일이 생겨도 충분히 시간을 주고 그것이 나를 지나가게 두면 마음이 다시 평안해지는 날이 온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마음에 새겨뒀다.

그 뒤로는 밋밋하지 않은, SF이자 소소한 도시 판타지인 것으로 보이는 단편소설 셋이 뒤를 잇는다. 이들은 평범한 도시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안에 낯선 소재를 주입해서 배경 또한 흥미롭게 만들어줬다. 특히, 김초엽 작가님의 <캐빈 방정식>은 현대물리학을 소재로 자매의 관계를 조명하는 SF로, 흥미롭게 읽었다. 이전의 임현 작가님의 <고요한 미래>는 집에서 물건이 사라지면 다들 조금씩 불안해지는 그 심리를 잘 노린, 현대인을 위한 호러소설이었다. 무서워하는 소재와 좋아하는 소재가 하나씩 쓰여서 더 흥미로웠다. 정지돈 작가님의 <무한의 섬>은 완전히 풍자소설이라고 느꼈다. 오빠를 오빠라고 부르지 않고 검은 머리 외국인, 줄여서 검머외라고 부른다든가, 잘생긴 친구를 강동원 닮았다며 참치라고 부른다든가 하는, 구체적으로 콕 집어 비아냥대는 부분과 현실감 있는 묘사도 재미있었고, 그 안에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소재가 그 안에 끼어들면서 추상적인 코스믹 호러가 발생한 부분도 즐겁게 읽었다. 맛있는 것들을 섞어서 더 맛있는 음식이 나온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