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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 심너울 소설집 리뷰

by 칠월색 2020. 8. 30.

 

오랜만에 볼륨 있는 소설집을 읽었다. 일명 "꼰대노노"로 불리기도 하는 소설집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 선물하기가 참 어려운 제목을 가진 이 소설집은 제목을 듣고 계속 읽고 싶어 하다가 사인본을 판매한다는 말에 혹해 바로 종이책을 구매했다. 표지가 마음에 들어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표지 그림은 표제작인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의 소재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생선이 에어팟을 꽂고 있다. 썩은 생선 냄새와 '에어팟 실버'는 작품 내에서 노추를 상징한다. 시대적 배경이 지금보다 더 먼 미래이기 때문에 하나는 과거, 즉 현실상에서 현재의 노추를, 다른 하나는 미래 시대에서의 노추를 상징한다. 지금은 노인을 추하다고 욕하는 우리도 결국 몇십 년 후면 노인이 되어 사회에 힘들게 적응하고 있을 거라는 걸 보여준다. 홍대에 에어팟 실버를 끼고 놀러 간 노인이 최신형 VR기기를 써봤다가 망신을 당하는 이야기를 보면 너무나도 그럴듯해서 놀랍다. 심너울 작가님이 정말로 미래를 보고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우리 세대의 노인 혐오가 심각하다는 것이 머릿속에 꽂히는 기분이 든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너희는 얼마나 잘났냐'며 젊은이들을 욕하는 것은 아니다. 씁쓸한 현실을 미래로 옮겨서 보여줄 뿐임에도 그 파급력이 어마어마하다.

표제작 외에 다른 소설도 정말 흥미진진하다. 책을 다 읽은 지 며칠 되었는데도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소설이 여럿이다. 특히 인상 깊은 걸 꼽자면 이다. 가상의 기업 연구소 안의 SF 동호회에 기업 부회장이 난입하는데, 디테일은 정말 현실적인데 따지고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어찌 보면 가능할 것도 같은..... 그런 오묘한 현실감을 가져서 자꾸 생각난다. 특히 후반부에, 주인공이 술 마시고 주사를 부리면서 하는 말이 자꾸 떠오른다. 스포일러일까봐 얘기는 못 하겠지만, 정말로 그럴듯한 이야기라서 자꾸 생각난다.

<한 터럭만이라도>는 요새 비건에 관심이 가는 상황이라 더욱더 재밌게 읽었다. 비건식을 실천하는 이유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만약 비건이 아닌 방법으로 그 이유를 해결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흥미로운 생각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 필요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인류가 행하는 행동이 길게 보면 인류에게 해가 되는 경우가 참 많은데, 축산업도 그중 하나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물성 재료로 고기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배양육을 시도하기도 한다. 만약 윤리적인 고민을 해소하기 위해 배양육의 세포 제공자에게 동의를 받는다면? 그리고 그 세포 제공자가 만약 사람이라 우리가 인육을 먹게 된다면? 이런 생각은 조금 앞서간 것 같지만 정말 미래에 이런 논의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이전부터 SF는 미래를 예견하곤 했으니.

이 소설집에서 꽤 유명해 보이는 소설은 <저 길고양이들과 함께> 이다. 추한 중년 남자 묘사가 인상을 찌푸리게 하지만, 정부의 개입과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의외로 평화적으로 끝난다. 이렇게 이상적으로 시행된다면 실제로 반영이 되어도 문제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 하게 된다. 아까 말했듯 SF는 미래를 예견하곤 했으니까.

<컴퓨터공학과 교육학의 통섭에 대하여>, <감정을 감정하기>, <시간 위에 붙박인 그대에게>는 SF라는 이름 아래 인간이란 무엇인지, 감정이란 무엇인지 의문을 던진다. 대화 AI를 가진 로봇, 전자뇌, 타임 패러독스는 SF에서 자주 보이는 소재이지만, 그것을 통해 조명하는 대상은 이전에 조명받았던 대상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컴퓨터공학과 교육학의 통섭에 대하여>는 학생이 하나뿐인 분교를 배경으로 한다. 학생이 소통할 대상이 로봇뿐인 게 정말 괜찮은지 고민하는 선생님과 로봇이 로봇임을 알고, 사람과 다르다는 걸 알고 현명하게 로봇을 '사용'하는 학생을 보면 여기에서 선생님이 표제작에서의 노인이 대표하는 구세대를, 학생이 표제작에서의 젊은 세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시간이 지나고 이전에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점점 당연해질 때, 구세대는 혼란을 겪겠지만 신세대에게는 그것이 이미 당연할 테다. 과학 기술이 점점 빠르게 성장함에 따라 이런 '당연함의 변동'은 점점 많아지고, 빨라진다. 그런 것을 느리게 흘러가는 분교 안에서 보여줬다는 점이 새로웠다.

<감정을 감정하기>는 뇌경색 이후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감정이 결국 신체의 반응과 연결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며 전자뇌가 실제로 상용화됐을 때 생길 법한 문제점을 보여주는데, 자발적으로 전자뇌를 제거하고 몸을 움직이지 않기로 한 주인공의 개성 덕에 이야기가 흥미진진해진다. 전자뇌에 찬성하고, 반대하는 것이나 안드로이드가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거부하는 것, 안드로이드의 권리 보장 같은 것들은 SF에서 자주 보이는 소재이지만, 전자뇌 덕분에 감정을 느낄 수 있고, 전자뇌가 없을 때 오히려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과연 어떤 쪽이 논리적인 주장을 하는 게 될까. 무작정 새로운 것을 반대하고 보는 사람들을 어느새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보여준다는 점이 재밌었다.

<시간 위에 붙박인 그대에게>는 자매의 관계를 다룬다. 불로불사와 타임패러독스는 각각 SF의 단골 소재이지만, 이를 결합한 아이디어는 새로웠다. 특히 그것을 자매가 보여주는 것이라면. <거인의 노래>는 전형적인 스페이스 오페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좀 덜 구시대적인 느낌이 든다. 이 책에 수록된 심너울 작가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젊은 분위기를 선보인다. 표제작마저도. 작품이 젊어 보인다는 건, 그만큼 새롭고 색다르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전형성 안에서 어딘가 색다른 구석을 꺼내 선보이는 게 작가의 특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에서 한 걸음만 더 걸어 나가면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런 작가이고, 그런 작품이다.

19쪽, "SF 클럽의 우리 부회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