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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현남 오빠에게 - 조남주 최은영 김이설 최정화 손보미 구병모 김성중 페미니즘 소설집 리뷰

by 칠월색 2020. 7. 9.

"82년생 김지영"으로 유명한 조남주 작가, "쇼코의 미소"의 저자 최은영 작가, "위저드 베이커리", "파과"등으로 유명한 구병모 작가 등, 7명의 여성 작가들이 모여 쓴 소설집이다. 책 내에서 저자 소개를 그 작가가 쓴 소설이 나올 때마다 해줘서 좋았다.

읽으면서 소설의 순서 구성에 감탄했다. 처음으로 나오는 조남주 작가의 "현남 오빠에게", 여기서 현남 오빠의 극도로 리얼한 '오빠'의 모습을 견뎌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가까이에 있는 취약해 보이는 여자를 심리적으로 지배하려는 그 수많은 전형적인 행위의 묘사를 견디면 주인공이자 화자의 시원한 마지막 한 방을 들으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현실에선 그렇게 한 방을 날렸다간 범죄 행위의 피해자가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은 씁쓸하지만. 그 부분은 작가 노트의 말과 심히 동감하는 바이다.

그다음은 최은영 작가의 "당신의 평화", 결혼하려는 부부 중 남자 쪽의 누나 입장에서 상황을 들여다본다. 고부갈등이 심하다는 말은 예전부터 많이 있었지만, 고부갈등의 원인이 무엇인지, 왜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그렇게 대하게 되었는지, 깊게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소위 '내리 갈굼'이라고 하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고통의 굴레. 없어져야 하지만 누군가가 중간에서 끊어야만 없어지는 흐름으로, 그 사람은 결국 피해자인 채로 가해를 멈추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억울함을 느낄까? 그 흐름 속에서 처음과 끝 외에는 모두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다. 그들이 준 피해가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라는 것이다. 고부갈등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 흐름 밖의 사람들 또한 가해에 동참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고부갈등이라고는 하지만 진정한 가해자, 가부장제가 그들을 억압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므로 괜찮다고 막연히 생각하는 남자들, 그들이 갈등에 더 힘을 실어주고 있지는 않은가? 잘못이 없었던, 그저 새로 가족의 구성원이 되었을 뿐인 여성에게 모든 짐을 넘겨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도 언젠간 마주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고민을 해봤지만, 이 문제는 가족 구성원 전체가 노력하지 않으면 해결하기 힘들다. 남자들도 이게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언제까지 집안의 문제는 '안사람'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신경을 쓰지 않을 것인가?

주인공이 결혼하려는 대상이 아닌, 그 위의 장녀이기에 고부갈등 외에도 모녀간의 관계나 자식들과 가족을 위해 삶을 바친 어머니의 모습도 자세히 보여준다. 여기서도 앞부분을 견디고 나면 뒷부분에서 깨달음을 준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모녀의 관계에 딸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면서 아, 저런 방법도 있구나, 싶었다. 모든 장녀에게 바치고 싶은 부분이었다. 작가 노트도 꼭 읽어보면 좋겠다.

김이설 작가의 "경년"은, 아들의 어머니가 된 여성의 생각을 보여주었다. 아들을 둔 어머니와 딸을 둔 어머니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학생 시절에 어머니들이 모여서 하는 얘기를 전해 들으면서도 알아낼 수 있었다. 왜 그렇게 되는가? 그 과정에서 정말로,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 그것을 보며 우리가 다시 그들을 배제해도 괜찮은 것인가? 적어도 배제가 답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아들을 둔 어머니를 가까이서 볼 일이 거의 없었기에 오히려 소설을 통해 그들을 조금이나마 알아볼 수 있었다. 그들은 가정에서조차 아들과 남편에 의해 배제당하기도 한다. 집안에서조차 소수자이다. 소설로나마 아들을 둔 기혼 여성의 마음을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이해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았으면 나조차도 무의식적으로 그들을 배제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이 너무나도 현실적인 흐름과 너무나도 가까운 주변인이 보이는 가부장제의 모습을 견디면, 조금은 거리가 먼 곳을 보여주는 글이 나온다.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여성이 주연을 차지하는 소설들이다. 경찰, 국회의원, 전직 형사, 특수 직업군이 여성인 작품이 얼마나 적었던가? 요새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는 점이 반갑다. 남성에 이입해야만 주인공에 이입할 수 있었던, 다양성이 너무나도 적은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최정화 작가의 "모든 것을 제자리에"는 추상적인 면이 있지만, 평범하지 않은 분위기에 젖어 몰입해 읽을 수 있었다. 손보미 작가의 "이방인"은, 어쩌면 자신이 느와르를 싫어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느와르는 여태껏 남자만의 세계로 보였다. 다른 수많은 장르와 직업 세계에서 그랬듯이. 그 틀을 깬 작품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그 장르를 즐길 수 있는 사람도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여자는 배제되거나 장식으로 만드는 장르를 탈피하면 더 넓은 소비자를 얻을 수 있다는 걸 더 많은 창작자가 깨닫길 바란다.

구병모 작가의 "하르피아이의 축제와 밤", 김성중 작가의 "화성의 아이", 마지막에 나오는 두 소설이 제일 재밌었다. 내가 SF를 좋아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둘은 SF에 발을 담그고 있는 소설이니까. SF 장르 또한 점차 여성주의적 시각을 받아들이고 있다. 젊은 작가들이 SF를 많이 쓰기 때문일지도, SF 장르 특성상 전형성에서 벗어나기 쉽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SF는 현실과는 좀 다른 배경에서 현실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이다. 두 소설 모두 그렇다. "하르피아이의 축제와 밤"은 내가 느끼기엔 반전이 많아 많은 것을 전달할 수는 없겠지만, 코스믹 호러와 궤를 같이하는 면이 있다고 느꼈다. 하지만 코스믹 호러의 대가인 러브크래프트는 절대로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을 보여준다. 소설에 등장하는 절대로 벗겨지지 않는 하이힐과 드레스,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화장이 주는 메시지가 정말 많았다.

김성중 작가의 "화성의 아이"는 좋은 SF이자 좋은 페미니즘 소설이다. 스페이스 오페라 또한 한때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지만 지금은 꼭 그렇다고 볼 수 없겠다. 소설이 시작할 때, 동면에서 깨어나는 주인공의 묘사부터 인상 깊었다. 사람들에게서 버려진, 혹은 희생된 동물, 로봇, 그리고 임신한 실험대상. 묘한 조합의 그들이 화성에 있다. 하지만 서로가 있기에 외롭지 않을 것이다. 소설집의 마지막 소설이 희망적인 시각을 보여주며 끝나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