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평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 - 듀나 소설 리뷰

by 칠월색 2020. 8. 30.

책 표지가 예뻐서 감탄하면서 책을 넘겼는데, 책 안에 있는 종이가 책 표지도 아티스트 구본창의 예술 작품인 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범상치 않다는 점이 소설과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판형 또한 높이 19cm에 폭 11.2cm로 일반 책보다 길쭉하다. 읽다 보면 스마트폰에서 글씨를 읽을 때의 가로세로 비율이 이 정도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종이책으로서는 새로우면서도 비율 자체는 친숙했다. 작가의 말에 나오는 것처럼 SF에 나오는 각종 소재를 모아서 새로우면서도 친숙한 소설을 만들었기에, 판형도 썩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아르카디아에도 나는 있었다> 외에도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은 다 같은 판형으로 나오는 모양이다. 색다른 판형에 양장본이라 책장에 꽂혀 있으면 개성이 느껴질 것 같다.

8쪽

책 첫머리에 레드벨벳 아이린이 한 말이 나온다. "모든 건 다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지.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 가사 같기도 한 이 말이 나오는 영상 클립을 본 적이 있었다. 듀나 작가가 아이린을 좋아한다는 건 알았지만 이 문구가 책에 적혀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러고 보니 주인공 배승예의 이름도 레드벨벳 멤버들의 이름에서 따온 것 같고, 주변 인물인 박기영 또한 그런 것으로 보인다. 듀나 작가의 레드벨벳 사랑을 이런 식으로 확인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생각하며 책을 넘겨 보면 정말로 작중에서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일은 다 갑자기 일어난다. 그리고 그 일의 원인을 찾으려 뛰어다니는 것을 보면 작중에 나오는 게임인 <블러디 문>과 같은 장르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SF 세계관에서의 탐정 수사물.

아르카디아란 뭘까? 처음에는 듀나 작가가 만든 고유의 단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책에 대한 반응이 궁금해 검색해보니 아이돌 앨범이 나와서 뭐지 싶어서 검색을 해봤고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있는 고대부터의 지역명으로 후세에 목자의 낙원으로서 전승되어 이상향의 대명사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품 내에서 아르카디아는 이상향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가 보기에 아주 낯선 공간은 맞다. 소행성대에 위치한 가상 공간 양로원이라니. 이 책 전체가 아르카디아에서 벌어지는 심상치 않은 일에 대해 다룬다. 그리고 책 대부분은 등장인물이 다른 인물에게 자기가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는 액자식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물이 말하면서 따옴표를 다 닫았는지 확인할 정도이다. 그래서 배경이 혼란스러워지고 누가 누군지 헷갈리긴 한데, 애초에 배경 자체가 혼란스러운 배경이라 그냥 받아들이면서 읽게 되었다.

소설 뒤에 있는 정소연 작가님의 작품 해설을 읽으면서 내가 책을 너무 아무 생각 없이 읽었나 하는 반성을 조금 했지만, 이렇게 혼란스러운 세계 속 혼란스러운 이야기라면 내가 잘못한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반발심도 조금 들었다. 그래도 세계관 자체가 매력 있어서 즐겁게 읽었다. 현실 세계에서 탈피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스페이스 오페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