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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덧니가 보고 싶어 - 정세랑 장편소설 리뷰

by 칠월색 2020. 3. 17.

어제에 이어 정세랑의 또 다른 장편소설을 읽었다. 이 책 역시 거의 하루 만에 주파했다. 정세랑 작가의 소설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홀린듯이 읽게 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소설가다. 그것도 장르문학을 쓴다. 챕터가 신기한 구성인데, 인물 둘의 장면이 번갈아 나오고 그 중 소설가의 장면이 나오면 소설가가 교정을 보는 단편소설이 액자식 구성으로 나온다. 그래서 장편 하나를 읽으며 그 안의 수많은 단편도 같이 읽은 셈이다. 어떻게 이렇게 아이디어가 샘솟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책 속의 단편에서 계속 남자 등장인물이 죽는다는 것이, '남자 등장인물을 죽여야 글이 재밌어져'라고 말하는 편집자의 말이 어쩌면 소위 '미러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냉장고 속의 여자'를 비튼 것 같기도 하다. 글의 재미를 위해 허무하게 죽는 작중작의 등장인물의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소설 안에서 그의 죽음은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상징하긴 한다. 주인공의 전 남자친구를 모티브로 한 인물을 계속해서 소설 안에서 죽이는 주인공의 심리는 단순한 복수보다는 더 복잡한 구석이 있으니까. 

판타지와 같은 구석이 있다. 배경은 분명 현대지만 글씨가 이유없이 피부에 생겨났다 사라진다. 결국 그 이유는 마지막까지 밝혀지지 않지만 사랑을 이뤄주는 매개와 같은 역할을 한다. 결국 로맨스다. 어쩌면 한국 드라마로 나와도 인기가 있을 것 같은 소재와 이야기다. 쉽게 상상이 된다. 

재밌는 상상력에, 군데군데 주인공과 공감가는 문구가 있어 재밌었다. 우울해하는 주인공의 생각이나, 행복은 일시적인 상태일 뿐이라는 주인공 친구의 말. 작가의 다른 장편소설인 '지구에서 한아뿐'과 마찬가지로, 여성향 로맨스와 결을 같이 하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여자가 주인공이고, 연애 얘기가 나오고. 하지만 작가는 결혼을 완성으로 묘사하는 전통적인 한국 드라마와는 다르게 결혼에 대한 의문을 항상 남겨둔다. 결혼하는 주인공의 친구가 하는 말을 빌려서. 요새 나오는 한국 드라마보다 좀 더 젊은 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내용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아쉬운 부분이나, 안 맞는 부분도 좀 있었다. 전 남친의 여자친구로 나오는 인물의 묘사가 입체적인 듯 하면서도 납득이 안 가기도 했다든가, 결국 연애로 끝나는 엔딩이나. 모아놓고 보니 결국 전형적인 로맨스 클리셰다. 읽고 나서 생각해보면 그런데 읽는 동안은 색다름을 선사하는 것이 소설의 장점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전형적인 로맨스가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진부하고 시대에 안 맞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소설은 전형적인 로맨스 같긴 하지만 전혀 진부하지 않고 시대에도 잘 맞다고 느껴졌으니 아주 좋은 로맨스 소설 아닐까. 로맨스에 관심이 없었어도 페이지가 잘 넘어간다는 점도 그렇고.

결국 다른 것을 배척하지 말라는, 이해하지 못한다고 없는 것이 아니라는 메세지를 소설 안에서도, 밖에서도 전해주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