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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지구에서 한아뿐 - 정세랑 장편소설 리뷰

by 칠월색 2020. 3. 16.

전자도서관을 무작정 뒤지다가 발견했다. "목소리를 드릴게요"를 도서관에서 빌려 읽다 소장 욕심이 들어 구매까지 한 나로서는 정세랑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빌려 볼 가치가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기대에 부흥하는 소설이었다. 반나절 만에 다 읽어버렸다. 이렇게 오랫동안 한 작품에 몰입해 본 것도 오랜만이다. 반 정도는 오디오북의 도움을 받았지만, 오디오북을 즐기는 편은 아니었기에 오히려 오디오북이 작품 덕을 본 걸지도 모르겠다. 귀로 듣든, 눈으로 보든 매력 있는 작품이었다. 

술술 읽힐 정도로 가벼우면서도 마냥 가볍지는 않았다. 정세랑 작가와는 가치관이 겹치는 면이 있어 읽기 아주 편했다. 책에 나오는 인물 모두 환경 파괴를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 점이 자연스럽게 묻어나 있어 좋았다. 또한 로맨스 소설을 즐기는 편이 아님에도 로맨스, SF, 미스터리, 일상이 모두 들어있는 듯한 이 분위기가 낯설지 않고 좋았다.  

주인공에 이입하기 수월한 책이었다. 어딘가 평범한 여자가 주인공이라고 하면 흔한 로맨스 같기도 하지만 로맨스 소설에서라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날 부분이 와도 책의 반 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반은 아주 행복하고 아주 멋진 인생 이야기다. 이렇게까지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행복한 얘기여서 기분이 좋았다. 주인공에 이입하는 편이라 그런지 평소에도 주인공이 곤욕을 치르는 장면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약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라면 악역에 대응될 법한 인물이 인생에서 영원히 사라질 줄 알았는데 추한 모습으로 다시 등장하여 주인공이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을 겪으며 보다 완전한 마무리가 이루어지므로 납득했다. 이 장면은 어쩌면 내게도 그런 인물이 있는데, 나는 그 사람을 영원히 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불만이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니어도 누구든 그 장면을 보면 복잡한 기분 정도는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작가가 의도한 바일 수도 있겠다. 

가볍게 읽었지만, 여운은 종종 남을 성싶다. 너무나도 완벽한 이야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