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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여주인공이 되는 법 - 서멘사 엘리스 에세이 리뷰

by 칠월색 2020. 3. 13.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아주 단순하다. 도서관에서 다른 책을 찾다가 책등의 디자인과 제목을 보고 혹해서 꺼내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책등에까지 금박을 한 책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책의 디자인이 완전히 내 취향은 아니지만, 흔하지 않은 디자인이라 눈길이 갔다. 제목의 경우는 이전부터 듀나의 "여자 주인공만 모른다"를 읽고 싶어 도서관 대출 예약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작가가 다양한 소설을 읽고 여주인공에게서 느낀 점을 일기처럼 적어두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 첫인상은 틀리지 않았다. 자전적 에세이로, 커가면서 읽은 소설과 그로부터 배워 성장하고 나아간 이야기를 다뤘다. 작가의 성장 배경인 이라크계 유대인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고, 그보다 더 친숙한 배경인 딸로서의 삶, 여자로서의 삶에는 공감하며 읽었다. 게다가 '독자', 소위 '책벌레'라는 소리는 나도 어릴 때부터 많이 들었기 때문에 아주 익숙했다. 이 책의 영어 제목에 "너무 많이 읽은 것에서 배운 점"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는 것을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알았는데, 재밌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안타까운 점은 내가 책에 언급된 주인공의 대부분을 모른다는 것이다. 고전을 좀 읽을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어린이용 고전 소설을 읽은 것이 거의 전부라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작가는 충분한 배려를 해준다. 소설 속 등장인물이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는지 일일히 설명해 줘서 언급된 소설을 읽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다. 책에 언급된 수많은 등장인물이 내 주변을 돌아다니며 수다를 떠는 장면이 상상될 정도다. 다만 내가 등장인물의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해 좀 헷갈렸을 뿐이다. 

작가가 소설의 주인공과 자기를 비교하며 책을 읽었듯이, 작가와 나를 비교하며 책을 읽었다. 작가에 비해 나는 여자주인공에 많이 이입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에서 장면을 제일 많이 차지하고, 독자가 이입하기 제일 좋은 주인공은 주로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는 것도 이유 중 일부를 차지할 것이다. 성별에 상관없이 이입하기 제일 좋은 대상에 이입했고, 안타깝게도 대게 그 주인공은 남자인 데다가 여자를 도구 취급하고 대상화하는 인물이었다. 최근 들어 그렇지 않은 작품도 많이 나오고 있고, 그런 여성 서사,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을 볼 때는 자연스럽게 여성에 이입하게 된다. 이전에 내가 이입했던 인물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공감하기 쉬운 인물이 작품에 많이 등장한다. 등장인물의 다양화라는 긍정적인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주인공에 이입한 경험이 적지만 그래도 이 에세이는 재미있게 읽혔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 내가 모르는 환경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호기심을 갖고 즐길 수 있다면 이 작품은 재미있을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누군가에게서 무언가는 배울 수 있다는 사실도 상기시켜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