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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장르 세계를 떠도는 듀나의 탐사기 - 듀나 에세이 리뷰

by 칠월색 2020. 2. 13.

짧은 감상을 먼저 말하자면, 정말 정말 재미있었다. 읽기를 정말 잘했다. 짧고 작은 귀여운 책인 데다가 짧은 글 여럿이 모인 것이라 더더욱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듀나 작가의 책을 많이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작가의 연륜과 경험이 여실히 느껴진다. 몇십 년을 장르 세계에 몸담고 있던 사람답게, 접한 작품도 많고 자신이 생각하는 장르에 대한 가치관이 확실해서 읽는 재미가 있다. 

장르물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부터 시작한다. 유독 다른 작품에 비해 문학에서만 순수 문학과 장르 문학을 구분하고, 우열화하는 움직임이 강하다. 이전에는 순문학, 고전문학도 많이 읽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장르 문학에 치중한 독서를 하고 있는 나는 장르 문학이 조금 더 얕고 넓다고 느낀다. 이해하는 데에 시간은 덜 걸리지만 더 넓은 세계를 탐사할 수 있다. 사실, 이 둘을 구분하는 것도 이제 구시대적인 발상일지도 모른다. 모든 장르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세상이니까.

공감 가는 이야기가 많았다. 창작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기에, 그리고 '백인 남자'가 아니기에 더더욱. 몇십 년 전부터 장르 문학에 발을 들였으면서 최신 트렌드 또한 놓치지 않고 기민하게 반응한다는 점이 듀나에게서 본받을 만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의 경력이 있으면 안주하거나 도태되기 마련임에도, 오히려 그런 이들을 비판하며 자신은 최신 이슈에 발맞춘 작품을 선보인다. '민트의 세계'를 읽을 때도 느낀 점이다. 듀나보다 최근에 장르에 발을 들였으면서도 훨씬 보수적으로 반응하는 소위 '팬보이'가 많은데, 이 책에서는 그들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나도 동의한다. 자신이 백인 남자가 아님에도 주인공에 이입하면서 그렇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도 백인 남자라고 믿는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 나도 어릴 때 주인공이 성별이 나와 다르더라도 이입하면서 봤기 때문에 조금은 공감할 수 있지만, 자신이 백인 남자가 아니면서도 백인 남자에게 이입을 할 수 있었다면 이제 주인공이 백인 남자가 아닌 인물이 된 것에도 적응해야 하지 않을까? 여태까지의 수많은 작품 세계는 현실 세계와는 뒤틀린 성비를 가진다. 주로 남자가 대다수이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왜 여자는 지워지는가? 그런 생각을 자주 하는 입장에서 이 에세이에 공감이 많이 갔다.

창작하는 사람, 특히 장르 문학이라고 하는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작품을 만들기 전에 해보면 좋은 생각들이 많이 적혀있는 책이다. 내가 갖고 있던 의문점에 이 분야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의견을 제시해주는, 인터뷰를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위 문단에서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더라도, 장르 문학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다면 강하게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