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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 크툴루의 부름 외 1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리뷰

by 칠월색 2020. 2. 29.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그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러브크래프트를 모르는 사람에게 러브크래프트가 밸런타인데이에 어울리는 사랑스러운 글을 썼다고 속이는 농담을 본 것이다. 러브크래프트를 모르는 상태에서 그 농담을 처음 봤기에, 나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잘 몰랐다. 그 농담을 설명하는 과정을 보고 뭔가 이상하고.. 촉수가 나오는 공포물을 쓰는 작가다, 그 정도의 이해가 생긴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최근 나는 '크툴루의 부름'이라는 TRPG 룰을 아주 제대로 즐기고 있다. 러브크래프트가 쓴 소설의 세계관인 크툴루 신화를 주제로 한 TRPG의 규칙이다. 이를 접하면서 나는 '코스믹 호러'가 무슨 의미인지 좀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공포가 내게 그렇게 낯선 것이 아님 또한 인지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괴담을 읽는 걸 즐기기 때문이다. 그런 괴담에서 주로 사용하는 형식은 아무것도 모르는 주인공이 이상한 일을 겪고, 그게 알고 보니 형용할 수 없는, 이전에 접해본 적이 없는 정체의 짓이라거나, 아니면 그 원인은 하나도 모르고 일이 끝나거나 한다. 이 형태는 러브크래프트의 소설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가 1920년대에 글을 쓸 때는 혁신적이었겠지만, 지금은 아주 흔한 공포 문법이 되어버렸다. 클리셰란 많이 쓰이는 뻔한 양식이라는 뜻이므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늘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 생각보다 신선하거나 재미있진 않았다. 그저 내가 하던 게임의 전신이 된 세계관이 이렇게 만들어졌구나, 하고 깨달을 뿐이었다. 그래도 괴담을 읽을 때 발휘되던 호기심이 있었기에 스토리의 결말, 즉 진상을 알고 싶어서 계속 읽게 되었다. 상당히 끔찍한 것에 대한 묘사를 많이 하는 것도 러브크래프트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정도냐면, 크툴루 신화를 묘사하기 위해 쓰면 좋은 형용사 목록이 있을 정도다. 따라서 내가 그런 묘사를 할 때 어떤 식으로 글을 써야 하는지, 참고서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묘사가 늘어져서 요즘의 스토리 전개가 빠른 글을 읽는 나, 그리고 다른 현대인들에게는 어필하기 힘들 것이라고 느꼈다. 

러브크래프트가 글을 쓴 이후로 100여 년이 지난 지금, 그가 회자될 때 꼭 언급되는 단어가 있다. 그것은 차별과 혐오다. 그가 공포를 주던 방식이 바로 낯선 것을 접했을 때 오는 두려움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러브크래프트는 자기 주변에서 흔하지 않은 형태의 인간에게도 두려움을 느꼈고, 그 방식이 소설에서도 드러난다. 지금 보면 참으로 심약한 사람이다. 그의 소설엔 지금 나온다면 아주 문제가 많고, 아무도 읽지 않을 법한 내용이 많다. 예를 들면 '피부가 어둡고 무서운 사람'이라거나, '그 여자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남성이 되길 원했다'든가.. 100년 전의 인권 감수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주인공은 백인 중년 남자, 희생당하는 건 여자와 아이들과 동물이다. 이런 특징은 우리에게 오히려 반면교사로서 다가온다. 소수자를 향한 혐오를 희생으로 드러내고 싶은 유혹에서부터 벗어나서 편견을 뒤집는 작품을 쓸 수 있도록 러브크래프트는 마치 그 자신이 크툴루인 것 마냥 우리 뒤에서 혐오를 마구 흔들어 댈 것이고, 우리는 이성적으로 생각하여 그를 피해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