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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바디무빙 - 김중혁 에세이 리뷰

by 칠월색 2020. 1. 20.

'바디무빙 - 소설가 김중혁의 몸 에세이'는 몸 곳곳을 주제로 작성한 에세이 모음이다. 제목인 '바디무빙'과 내용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썩 들지는 않는다. '바디'는 이해할 수 있지만, '무빙'을 붙이기에는 상당히 정적이다. 어쩌면 작가의 생각이 통통 튀듯이 넘어가니 그것이 '무빙'을 맡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총 4부로 구성된 에세이 중간중간에는 '믿거나 말거나 인체사전'과 '몸의 일기'가 끼어 있다. 에세이와 비슷하지만 좀 더 가볍고 짧은 이야기를 일러스트와 함께 다룬다. 요새는 귀여운 일러스트를 책 중간에 넣은 시집이나 에세이가 많다. 공감과 힐링을 주제로 다루는 작품들이 유행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확실히 중간에 나오는 이 내용들은 요새 유행하는 에세이처럼 가볍고 간단하다. 반면 에세이 본 내용은 그보다는 조금 더 심도 있게 자신의 생각을 펴내고 있다. 하지만 자유로운 사고는 유지하며 '의식의 흐름'처럼 주제를 바꾸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와중에 공감할 만한 문구들이 콕콕 박혀있다. 읽는 중에 공감이 가거나 인상 깊은 문장들이 많아 자주 책을 내려놓고 메모를 하기도 했다. 책을 읽다 보면 작가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웃기도 하고,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게 된다. 부담 없이 가볍게 들고 읽을 수 있는 에세이이다. 

글 중간중간에 자신이 본 여러 작품을 소개하거나 인용하기도 한다. '입으로 쓴 편지' 에서는 영화 <그녀>를 인용하며 형체 없는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 '테오도르'를 얘기한다. 

 

"테오도르는 누군가를 사랑한 게 아니라 사랑과 사랑에 빠진 것이며, 자신의 마음속에서 자라난 사랑과 사랑에 빠진 후 그 사랑을 떠나보내는 방법을 배운 것이며, 어쩌면 그냥 자신을 계속 사랑한 것이다." p.92

"테오도르는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 후 뭘 깨달은 것일까. 헤어지고 나서 진정 사랑하는 법을 깨달은 것일까. 그는 여전히 자신만 사랑하는 것 같다. 영화에 등장한 대부분의 여성들이 주체적이지만 테오도르는 여전히 그녀들을 대상으로만 보고 있다. 영화 <그녀>는 수많은 'she'들을 끝내 'her'로만 여기는 테오도르의 이야기인 셈이다. " p.93

 

비록 원 주제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 있으나, 이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그녀>를 본 사람들은 테오도르의 행동을 기억하며 고개를 끄덕일 것이고, 영화를 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주위 사람, 혹은 자신에게서 이런 면을 찾으며 공감, 혹은 반성할 수 있다. 이렇게 작품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또 다른 주장과 연결시켜가면서 에세이가 전개된다. 

 

가벼운 에세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읽을 수 있다거나, 얻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상 깊은 문장들은 여러번 책을 뒤로 넘겨 다시 읽으며 곱씹게 하기도 한다. 

 

세상에는 시간과 맞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시간을 쪼개서 얻는 것이고, 둘째는 시간을 고의로 잃는 것이다.  p.34

 

우리가 살면서 매번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몇 개의 선택 중에 가장 나은 선택을 고를 수 있다면 세상에 나쁜일은 하나도 생겨나지 않을 것이다. p.38

 

잃어버린 것을 애도하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것의 이름을 제대로 부를 수 있을 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p.47

 

이와 같은 짧은 문장들은, 각각 하나의 작품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밀도 있다. 하지만 일관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앞과 뒤가 맞지 않다는 뜻은 아니지만, 중구난방 하다는 생각을 버리기는 힘들다. 모든 주장에는 '몸' 이외의 접점이 없다. 그저 한 인물의 생각이라는 것뿐이다. 하지만 한 인간의 생각이 얼마나 넓은 범위를 차지할 수 있는지는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다들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정말 쉽게 쓴 에세이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다. 작가 자신의 이야기도 서슴지 않는다. 그것이 소설과 에세이의 차이점 이리라. 그리고 에세이에서 찾을 수 있는 특징이자 장점은 작가의 생각을 오롯이 담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의 생각을 이토록 직접적으로 불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기에, 한 번쯤 읽으며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2017년 3월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