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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나를 보내지 마 - 가즈오 이시구로 장편소설 리뷰

by 칠월색 2020. 1. 16.

읽어나가기 시작할 때 분명 작가는 일본 태생인 것 같은데, 작품 배경은 영국이라 조금 어리둥절했다. '나를 보내지 마'는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SF인 듯 아닌 듯 한 소설이다. 분명 현실과는 조금 엇나간 배경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은 아마 접할 수 있는 복제인간을 주제로 한 작품 중 가장 감성적이고 섬세한 작품일 것이다. SF 특유의 기계적인 분위기 보다는 평범한 10대 청소년들의 성장소설에 가까운 분위기 인데다, 복제인간을 연상시킬 수 있는 단어만 언뜻 언뜻 등장할 뿐, 아무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작품 내부에서 이 '비밀'을 대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 작품 내의 청소년들의 비밀을 다루는 태도는 그들의 기숙사 생활에서의 사건들과 같이 독자가 10대를 추억하게 해준다. 아무도 이들이 평범하지 않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똑같이 감정을 느끼고, 행동하고 예술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감추기 어려워질 때 쯤 이들은 기숙사를 떠난다. 이들은 이전에 받은 교육과는 전혀 상관 없이 장기를 기증하고, 장기 기증자들을 간병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들은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다. 그저 처한 상황을 수긍하고 살아나갈 뿐이다. 가끔씩 이루지 못할 꿈을 꾸기도 하지만, 점점 현실적이 되어가며 그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다. TV에서 본 행동들을 따라하면서, 그것이 정상인 것 마냥 행동하는 모습에서 괴리감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결국 그들의 모습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마지막에서야 오직 두 명의 학생만이 자신의 교장선생님과 그들의 작품을 가져가던 '마담'에게서 사회가 자신들을 바라보는 시선의 진실을 알게 된다. 그것은 다른 SF에서 복제인간이 처하게 되는 상황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여태까지 나름대로 '평범하게' 살아오던 그들이 자신의 상황을 알게 되면 현실감이라도 느낄 수 있을까? 그야말로 소설 속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이다. 그들은 여태까지 어렴풋이 느꼈던 사실을 갑자기 직구로 맞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예전과 똑같이 간병인과 기증자로 살아가야 한다. 이들은 사회에 맞서 싸울 생각조차 하기 힘들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그저 소시민, 혹은 그 이하로 살아온 그들은 사회에 저항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저 살아갈 뿐이다. 그런 모습이 우리와 정말 다르지 않게 그려진다.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2017년 3월 17일에 씀. 

 

추가로 알게 되어 덧붙이자면 가즈오 이시구로는 일본 태생의 영국 작가이다. 또한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최근 "장르 세계를 떠도는 듀나의 탐사기"라는 책을 읽고 있는는데, 순문학과 장르의 경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이 소설이 언급되었다. SF가 대표작인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것을 보면 확실히 그렇다. 문학에서만 유독 순문학과 장르물을 나누고 우열을 가르려고 하는 움직임이 큰데,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20년 2월 11일에 덧붙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