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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 박노해 시집 리뷰

by 칠월색 2020. 1. 14.

박노해 시인의 본명은 박노해가 아니다. ‘노동자의 해방’에서 따 와 이름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 시집을 읽기 전에 이름이 신기하다고 생각해 찾아보았고 덕분에 시집을 읽으며 ‘아, 이런 시인이구나’를 조금 더 빨리 납득할 수 있었다. 정치적으로 매우 편향되어 있음이 시집에서도 많이 드러났다. 엘리트주의를 비판하고 환경주의, 반미주의에 집중해 있음이 시집에서 보였다. 시를 이렇게 정치적 메시지를 담으면서 쓸 수도 있구나 싶었다. 이런 시를 읽은 기억은 많지 않다. 서정시가 아니라 모더니즘을 담은 시라도 이렇게 노골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인상 깊은 시 중 하나는 “삼성 블루”였다. 마침 관련 이슈가 핫할 때라 그런가, 좀 더 충격이었다. 시가 이런 식으로 현대적인 느낌이 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아이폰의 뒷면”과 함께 이 시집이 2010년에 쓰였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해주는 시였다. 제 3세계에도 관심이 많아 보였고, 우리나라의 학벌주의를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왜인지 와 닿지 않았다. 이것은 내가 그가 비판하는 부분들을 반대하지 않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환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고, 우리나라에서 무조건적으로 청소년에게 공부만 하라고 하는 것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박노해 시인과 비슷한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쓴 시를 보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 것 같은데…’ 그 이상으로 느껴지는 바는 없었다. 오히려 너무 과하게 감성을 자극하려고 해서 그런가, 시를 읽는 독자에게 생각을 강요하고 행동하라고 외치는 느낌이 썩 좋지는 않았다. 시인은 시를 통해 말한다. 독자의 마음을 시를 통해 움직여야 한다. 박노해 시인의 시는 독자의 마음을 시로써 움직이려고 하기 보다는, 마치 정치인의 연설문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래도 "넌 나처럼 살지 마라"라는 시에서는 느끼는 바가 강했다. 사실 제목만 보면 마치 유행어처럼 담배 피우는 복학생이 담배 한 번 빨고서는 ‘하… 너는 이런 거 피우지 마라’라고 할 것만 같다. 그래서 읽어보았는데,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였다. 1연을 읽자마자 마음속에서 ‘아…’ 싶었다. 부모님과 사이가 매우 친밀한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 아버지의 차에 타면 아버지가 하시는 말들이 떠오르면서 마치 복학생의 담배처럼, 한숨이 먼저 나왔다. 아버지는 하고 싶은 일과 관련 있는 일을 하고 계신다. 이전부터 나는 아버지를 존경했다. 하고 싶은 일이 직업이라는 것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도 어린 나에게 종종 하고 싶은 것을 찾아야 한다는 말을 하셨다. 반면에 어머니는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셨다. 어머니는 안정적인 직업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하셨다. 그럴 때마다 왠지 오기가 들어 나도 아버지처럼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딱 한 번, 일이 힘드실 때, 아버지께서 그러셨다.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두고, 직업은 돈을 벌 수 있는 것으로 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그 때 받은 충격은 생각보다 컸다. 고등학교 때까지도 학교에서 존경하는 사람을 물어볼 때 나는 아버지를 꼽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런 말을 하시다니. ‘넌 나처럼 살지 말라’고 하시다니. 그 순간이 떠올라 이 시가 특별하게 느껴졌다. 어머니도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셨다. 가끔 직장에서의 일이 힘드실 때면 ‘너는 편한 직업을 가져라’ 라면서 한숨을 쉬시는 어머니.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악도 남지 않은 휘청이는 몸으로 누워 말씀하실 때면 왠지 모르게 짠함과 동시에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스무 살도 아니고 스물 두 살이 되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고/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게 느껴지는 대학교 3학년 학생인 나는 내가 무엇을 하든지 내 밥 벌어먹을 만큼이라도 돈을 벌 수 있을까라는 확신도 서지 않는 것이다. 자식이 부모조차 존경할 수 없는 세상을/제 새끼에게 나처럼 살지 말라고 말하는 세상을 우리는 요새 소위 ‘헬조선’이라고 부른다. 세상은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그 어디에도 기댈 곳도 없고“ ”제 자식 앞에 스스로 자신을 죽이고/정직하게 땀 흘려온 삶을 내팽겨쳐야 하는/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지 막막하다.

하지만 솔직히 이 시가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뒷부분에서 공감을 하기가 어려웠다. 앞부분만 보면 사실 조금 과장한 모더니즘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텐데. 나는 돈에 미친 세상돈이면 다인 세상이라고 할지라도 그 세상에서 차라리 죽어 버리거나 죽여 버리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이것이 박노해 시인의 사상이 드러나는 부분이고, 나와 박노해 시인의 생각의 차이이다. 같은 ‘헬조선’을 보고 거기에서 독자들은 각자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그러니 싸우자!’는 메시지를 들이민다고 느꼈다. 박노해 시인의 시는 매우 직접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서정시로 끝날 수 있는 내용의 시에 너를 망치는 것들과 당당하게 싸워가라는 메시지를 넣는 것이 이 시인의 방식이다. 이 방식이 다른 주제가 되는 어릴 때와 다른 부모님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충격을 오히려 약화시키고, 독자의 집중을 흐트러뜨린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다. 

 

2018년 3월에 씀. 

시를 전문 인용했던 부분을 삭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