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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그대 눈동자에 건배 -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집 리뷰

by 칠월색 2020. 1. 13.
히가시노 게이고가 유명한 것은 알고 있었다. 아마 '그대 눈동자에 건배'가 베스트셀러일 즈음부터. 그전에도 유명했다고는 하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작가일 뿐이었다. 그래도 일러스트와 제목이 인상 깊어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 존재를 잊고 있다가, 우연히 아무것도 하기 싫어 전자책 목록을 뒤적거리다 발견해서 새벽까지 단숨에 읽어버렸다. 사실 책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단편집인 줄은 몰랐다. 요새 왠지 단편집을 많이 읽고 있다. 다양한 작가의 단편을 모아둔 단편집이나 장편소설과는 달리, 이런 식으로 한 작가가 쓴 단편집을 읽으면 작가의 특징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이야기 흐름이 짧아 쉽게 읽히고, 마음의 준비도 덜 해도 돼서 오히려 장편소설 한 권보다 빨리 읽게 된다.
이 단편집으로 내가 본 히가시노 게이고는 확실히 '일본 작가'였다. 처음에는 일본 특유의 문화나 일본어로 된 단어가 많아 일본인이 아닌 나는 제대로 즐기기 힘들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모르는 일본 문화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되면서, 이야기를 파악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오늘 밤은 나 홀로 히나마쓰리'라는 소설이 특히 그랬다. '히나마쓰리'가 무엇인지 잘 몰라도, 소설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무슨 맥락에서 쓰인 비유인지, 대략 어떤 문화인지 알 수 있었다. 힘든 상황에서 나름대로 즐기는 법에 대한 비유로 적절하다고 느꼈다.
내가 그를 일본 느낌이 강하다고 생각한 또 다른 이유는 소설이 어딘가 미묘한 분위기로 흘러가다가 마지막에는 깔끔히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잘은 모르지만, 일본은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돌려 말하고, 의도를 숨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읽으면서 '왜 말을 하지 않는 거지? 바로 해결하면 될 것을….' 싶은 면도 있었다. 그래도 어딘가 의뭉스러운 분위기를 계속 풍기는 것이 주는 묘한 긴장감이 싫지는 않았다. 추리소설이나 스릴러를 읽는 기분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잘 꺼내고 싶어 하지 않는 묘한 감정을 드러내며 사건을 전개하기 때문에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단편인데도 기승전결이 뚜렷하고 결말이 깔끔한 것도 좋았다. 책을 덮으면서(전자책이라 실제로 덮지는 못했지만) '베스트셀러일 법 하다'고 생각했다.

 

2018년 11월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