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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 황지우 시집 리뷰

by 칠월색 2020. 1. 16.

황지우 시인의 다른 시집인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를 훑어보다가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를 읽었다. 두 시집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달랐고, 두 감정의 흐름 모두 공감 가는 부분이 있었다.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는 조금 더 이성적이고 객관적으로 사유하고자 하는 생각이 보였다. 문학에서 객관성을 보는 것은 아이러니이지만 시인이 시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생각한 흔적이 보였다. 반면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에서는 삶의 밑바닥에서 보이는 것들을 담아낸 흔적이 많았다. 죽음, 우울, 사랑을 주제로 하는 시가 많았고 감정에서의 솔직함이 더 드러나 보였다. 책 뒤에 적힌 글을 보면 황지우 시인은 90년대 당시 정신병리에 심취해 있었고 그를 관찰하고 실험하는 시기를 겪었다고 한다. 그는 모든 착란적인 것이 시적인 것은 아닐지라도 어떤 착란적인 것은 시적이라고 말했다. 우울증을 겪어본, 그리고 아직 완벽히 벗어나지 못한 사람으로서 상당 부분 동의한다. 착란을 겪어본 적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감정의 떨림이 예술과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는 경험해 보았다. 황지우 시인이 그린 우울은 나의 그것과 완벽히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나의 깊은 감정에서 떨림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는 있었다.

시집을 읽으면서 내 밑바닥과 황지우 시인의 밑바닥,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밑바닥을 보면서 순간적으로 추락하는 기분이 들어 가슴이 철렁하기도 하고 왠지 허무해지기도 했다. 밑바닥을 보는 것은 흔한 경험은 아니다. 실생활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고, 문학 작품에서도 흔하게 다루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시집을 읽으면서 공감을 하며 밑바닥으로 가기 위해, 그리고 밑바닥에서 다시 정상상태로 회복하기 위해 에너지를 써야 했다. 흔하지 않았기에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거울을 자주 본다. 거울을 볼 때마다 보는 것은 내 모습이지만 그것이 항상 같아 보이진 않는다. 우울할수록 자존감이 낮아져서 거울을 봐도 아쉽고, 사진을 찍어도 못생겼다고 느낀다. 자존감이 높으면 거울을 보고, 사진을 찍었을 때 조금 더 만족할 수 있다. 그래서 거울을 보고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내 감정이 어떤지, 자존감이 높은지를 알아내기도 한다. 우울할 때는 사진을 잘 찍지 않는다. 찍어도 만족하지 못한다. 거울도 자주 보지 않는다. 우울한 거울이라는 제목을 보고 든 생각이다.

이 시집을 펴 든 때에 나는 비교적 감정적으로 힘들었다. 이 에세이를 쓰는 순간도 그렇다. 마음이 진흙탕에 처박히는 감정을 나는 황지우 시인과 공유할 수 있다. 그래서 "우울한 거울 3"이라는 시에 마음이 갔다

이전의 나는 정말 긍정적이었다. 긍정적이다 못해 낙관적이었다. 드높은 화란 창천에 올라 있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지금보다는 꽤 자만해 있었다. 나의 능력을 과신하고 있었고 대학에서 어떤 일들을 마주할지 몰랐다. 정말 어림 턱도 없었다.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며 계속 걸어가다가 철퍼덕 나가떨어진 것이다. 더욱 더러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서 멍하니 부유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 허무하고 비참하면서도 묘하게 마음이 편한 감정에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상태를 지속하면 더 심해질 거라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에 미친 척 마음 가지고 놀수 만은 없었다. 다시 빠져나갈 수 있을지 아슬아슬했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생각을 아예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앞으로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몰랐고,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제일 인상 깊은 부분이 마지막 부분이었다.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없었기 때문에 돌아갈 길목에다가 램프를 두고 왔던가?” 라는 의문을 던질 일이 없었다. 그렇게 의문을 던질 새도 없이 어느새 돌아가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내가 놓아둔 램프가 있었고, 덕분에 돌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를 읽으며 깨달았다. 그래서 이 시에 감사를 표한다.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시는 뛰어난 시일 것이다. 이 시는 우울한 이들의 마음에 울림을 준다. 비록 시인이 그를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시를 읽다 보면 시의 화자처럼 나와 비슷한 심정의 사람이 나 말고도 또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우울할 때 의외로 위안이 되는 것 중 하나가 생각보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또한 시를 거의 다 읽은 후 돌아갈 길목에 있을 램프를 생각하면 왠지 마음이 안정된다. 우울함의 시작과 진행을 공감 가도록 전달한 것에서 나는 이 시가 뛰어난 시라고 생각한다

 

2018년 3월에 씀. 

서평을 쓴지 얼마 안 되어 황지우 시인의 성희롱 추문이 있었다는 것을 밝힌다. 이 서평은 그전에 책을 읽고 쓴 것이다. 수업 내 성희롱 발언 의혹으로 강의에서 배제되었다가 작년 2월 징계 처분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시를 전문 인용하는 것이 저작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고 하여 시를 삭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