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이 되어주지 못하는 나로 인해 가장 서러운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을. p9
가여운 단 한 명의 관객을 위해서 광대 옷을 억지로 입고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 공연을 했는데, 그 관객은 공연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객석을 떠났던 것이다. p67
'퀸'이라는 밴드의 곡과 제목이 같다. 몇 년 전, 우연히 접하게 된 'Bohemian Rhapsody'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대부분의 영어 노래는 가사에 담긴 내용을 깊게 생각하지 않고 멜로디와 리듬을 주로 듣게 된다. 하지만 친구가 이 곡을 소개해 줄 때는 곡의 가사를 그림으로, 만화로 담은 것을 보여주며 노래를 들려주었다. 가사의 내용을 그렇게 적나라하게 알고 난 후 곡을 듣자 색다른 구성과 함께 의미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가사에 담긴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우연히 접한 책은 동명의 곡과 비슷한 인상을 남겼다. 처음에는 표지가 색달라서, 소개에 의해 접하게 되었다. 읽을수록 스토리에, 그리고 주인공에 이입하게 되는 것 또한 노래와 비슷했다. 책을 읽는 것을 본 사람들 모두가 이 책을 보고 곡을 연상시키며 곡과 무슨 관련이 있냐고 물었다. 실제로 책 부분 부분에 뜬금없이 노래의 가사가 담겨있다. 뜬금없다고만 할 수는 없는 것이, 실제로 이 주인공의 이야기가 곡과 비슷하기도 하고, 주인공이 이 노래를 정말 좋아하기도 한다. 노래 예찬, 퀸 예찬, 그리고 프레디 머큐리 예찬이 곳곳에 등장하는 것이 책의 제목을 수시로 인지시켜준다.
곡과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는 것은 어쩌면 주인공, 화자에 대한 연민 때문이리라. 곡에서의 주인공은 살인 후 엄마를 부르짖으며 죽을 상황에 직면한다. 연출은 이 주인공의 심리에 집중한다. 또한 구성이 계속 바뀌며 뮤지컬을 연상시킨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노래이다. 책에서 주인공이 살인을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엄마가 다른 사람에 의해 사망했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주인공에게 연민을 느끼게 되는 이유는 이 상황 뿐은 아니다. 우연히 심리치료를 받는 주인공은 겉으로 보기에는 직업이 판사인 데다가, 애인도 있다. 잘 나가는 것으로 보이는 그의 심리에는 안타까운 면들이 숨어 있다. 이가 꿈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환상이 보이기도 한다. 심리치료를 통해 자신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생각보다 세세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에 읽는 도중에 '내가 상담 사례집을 읽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겉으로는 사건을 위주로 서술되지만, 판사인 주인공의 심리를 풀어내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는 것을 책을 읽다 보면 깨닫게 된다. 소설이 사건 위주로 전개되지 않으면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이 작품은 충분히 주요 내용이 심리치료인 이유를 독자에게 납득시킨다. 심리 치료 과정을 따라가며 나도 상담을 받는 기분을 받기도 하고, 판사처럼 나 또한 무언가가 해소되는 기분을 받기도 했다. 책을 다 읽은 이후에 계속 뒤숭숭한 꿈을 꿨다. 심리 치료에서의 '퀸'이 한 것처럼, 혹은 주인공이 한 것처럼 나는 내 꿈을 해석할 수 있었다. 어쩌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도 있는 책이다.
어느 소설에나 존재할 법한 '악당'이 있다. 여기서는 조금 더 현실적으로 악랄하다. 시골마을에서 연줄보다 더 센 것이 어디 있겠는가. 연줄을 활용하여 '일개 판사'를 무력하게 만드는 악당, 그리고 그를 막기 위해 싸우는 판사. 어떻게 보면 뻔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사건 전개는 전혀 뻔하지 않다. 그렇기에 오히려 현실적이다. 악당이 벌을 받았다는 것은 '해피 엔딩'으로 보이지만 그 엔딩 속에서 판사는 전혀 행복하지 않다. 소위 '사이다'와는 거리가 좀 있다. 그의 주위 인물들이 모두 꼬여있고, 다들 그를 속였다. 그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던 친구는 사실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그것은 그가 자살한 이후에 밝혀진다. 상담 치료를 통해 애인과도 문제가 있음이 밝혀진다. 결국 주위에 아무도 남지 않아 판사는 외로워진다. 그런 결말이 어쩌면 힘이 빠질 수도 있다. 너무나 현실적이기에 힘이 빠지고,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마지막에 주인공은 그토록 좋아하던 'Bohemian Rhapsody'를 듣는다. 친구의 죽음과 맞닿은 가사를 듣는다. 노래 속 주인공처럼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판사는 현실 속에서 외로운 우리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 작가는 주인공과 같은 판사이다. 주인공은 작가를 비춘 거울일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의 일기장을 보고 썼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래 보이기도 한다.
2017년 3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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