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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자신을 행성이라 생각한 여자 - 반다나 싱 SF 소설집 리뷰

by 칠월색 2020. 1. 13.

인도 출신의 SF 작가인 반다나 싱이 쓴 소설집이다. 이 책에 나온 인도 문화 중 아는 거라곤는 웹툰 '쿠베라'에 나오는 신 이름 몇 개 정도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계속 읽게 됐다. 작가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싶어지는 책이었다. 읽는 데 속도가 나지는 않았지만 단편 소설 하나하나가 울림을 줬다.

SF답게 수학/과학을 전공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갈 법한 개념과 내용도 많이 들어가 있었다. "유한 안에, 그러니까 수직선 위의 그 작은 도막 안에 무한이 존재한다. '얼마나 심오하고 아름다운 개념인가!'"라고 감탄하는 수학 교사가 나오기도 하고, SF에 흔한 소재인 평행우주와 대칭을 엮은 단편소설도 있다. 작가가 이론물리학자임이 잘 드러났고, 수학사, 과학사도 언급되어 묘하게 반가워하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책 뒷편에 "반다나 싱의 대담한 우주론은 아서 C. 클라크의 합당한 상속인 자격을 부여하고 있다."는 말이 이해가 될 정도로 하드한 SF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그럼과 동시에 이 책을 SF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SF보다는 현대 사회를 그린 소설 혹은 판타지 소설에 가까워질 때도 있었다. 책 제목과 동명인 "자신을 행성이라 생각한 여자"도 그랬다. 아내를 무시하던 권위적인 남편이 굉장히 통쾌하고 아름다운 복수를 당하는데, 그 과정에서 아내는 자신이 행성이라고 주장하며 하늘로 승천(?)한다. 뱀이 될 수 있는 여자가 나오기도 한다. 전반적으로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자신의 의지를 상실하게 하는 가족과 사회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여성 주인공이 돋보이는 소설이 많았다. 이는 작가가 인도 뉴델리에서 나고 자라면서 깨달은 사회의 문제점을 소설에서 해소하면서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느꼈다. 이런 면에서는 SF의 의의는 살리지만, 소재는 그렇지 않은 소위 '소프트 SF'에 가깝다고 느꼈다.

책의 첫 소설인 "허기" 마지막 부분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SF 소설은 무척 난해한 방법으로 위대한 진실을 말하고자 한다는 걸, 문학에 심취한 속물들을 속이고, 무심한 독자들을 불러 세우기 위해 설계된 일종의 암호라는 걸,"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하드 SF와 소프트 SF를 나누고 재단하려고 하는 SF 독자에게 SF 소설의 의미가 무엇인지 되새겨주는 소설이라고 느꼈다.

 

2019년 4월 1일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