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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토끼의 아리아 - 곽재식 소설집 리뷰

by 칠월색 2020. 1. 12.

곽재식 작가의 소설집을 벌써 다섯 권이나 읽었다. 이번 책에서도 역시나 이전 단편집에서도 볼 수 있었던 곽재식 작가의 특징이 많이 보였다. 그 외에 이번에 새로 알게 된 특징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한국의 회사에서 생기는 일을 묘사하는 소설이 많은데, 이번에는 한국 이공계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을 다루는 것이 보인다. 이전에도 느꼈던 점이지만, 특히 최근 몇 년간 이슈가 되었던 국내 연구원들의 해외 취업을 기술 유출로 보는 움직임에 대해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 단편소설 '토끼의 아리아'에서 다룬 것이 인상 깊었다. 알고 보니 곽재식 작가는 이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계속 고수하고 있었고, 소설이 아닌 다른 창구를 통해서도 이를 비판한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https://www.nocutnews.co.kr/news/126576) 그것을 소설에서도 표현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고, SF가 오히려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점에서 사회 비판을 하는 데 쓰기 좋은 면이 있다는 모순적인 특징을 좋아하는 데다가 이공계열 직업에 종사할 예정인 나로서는 소설에서 이런 사건을 다룬다는 것이 상당히 긍정적으로 비쳤다. 게다가 '흡혈귀의 여러 측면'에서는 이공계열 교수가 연구비를 횡령하고 대학원생에게 업무를 떠넘기는 것을 묘사하며 이를 비판했다. 이 또한 대학원에서 문제가 되는 일인데, 이를 소설에서 다루면서 이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읽는 내내 교수에게 분노를 표출하게 되고, 결말 부분에서는 통쾌함을 느낄 수 있다. 대학원생이 읽으면 더 즐겁게 읽지 않을까 싶다.

작가의 말에서 각 소설이 쓰이게 된 경위를 설명해주는 것도 재밌었다. 어쩌다 이런 소재로 글을 쓰게 되었는지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특히 '4차원 얼굴'을 쓰게 된 경위가 학교 수업의 벡터 미적분학을 듣다 떠올린 상상이라는 점과 수학자인 작가의 친구가 '4차원'이라는 말을 특이한 사람에게 붙이는 것을 싫어한다는 얘기를 써둔 것이 인상 깊었고, 소설을 읽을 때보다 좀 더 소설에 깊이가 생긴 느낌이었다. 다만 소설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작가가 적어두는 바람에 단점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부분인데 그 부분을 읽고 소설이 더 아쉬워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다른 아쉬운 점이자 특징은 성별에 따른 역할이나 표현이 분리가 강하다는 점이다. 이전에 읽은 다른 한국 SF 작가의 소설에 비해 연애, 특히 이성애에 관한 묘사가 짙고, 주인공이 남자인데 여자는 주인공이 좋아하는 사람이나 주인공을 좋아하는 사람, 혹은 연인이거나 부부 사이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오히려 한국적인 모습을 묘사하는 것에 강한 작가이기 때문에 이조차도 한국이 연애나 결혼에 유독 집착하는 것을 잘 묘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